2008년 8월 17일 일요일

[태을주] 왜 태을주 수행을 해야 하는가






왜 태을주 수행을 해야 하는가

style="MARGIN-LEFT: 14px; TEXT-INDENT: -1px; LINE-HEIGHT: 150%; MARGIN-RIGHT: 12px"
align=left> 상제님 도법을 생활화하면서, 여러분 가슴에 새겨 둬야 할 가장 근본적인 게
있습니다.

 그것은, ‘왜 태을주 수행을 해야 하느냐?’ 하는,
color=blue size=3>수행의 필요성입니다.
 상제님 말씀을 요약하면,
color=green size=3> “오는 잠 적게 자고 태을주를 많이 읽어라.
이번에 개벽할 때 태을주를 읽지 않는 자는 신명도 인간도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
죽는다.
”는 것이죠.
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? 예수를 믿든, 석가모니에게 매달렸든, 종교를
안 믿는 무신론자가 됐든, 태을주를 안 읽는 자는 이번에 다 죽는다는 말씀입니다.

 왜 태을주를 읽어야만 사는
걸까요?
 도전을 읽어보면, 상제님이 조화정부에서 우주신명들에게 그렇게 명령하셨습니다. 천명을 내리신 것입니다. 개벽 때, 이
태을주를 바탕으로 의통으로써 인종씨를 추립니다.size=3>
 상제님은 태을주에 대해, 여러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.
 
 
class=sunggu>‘훔치훔치’는 천지부모를 부르는 소리니라
 송아지가 어미를 부르듯이
창생이 한울님을 부르는 소리요 낙반사유落盤四乳는 ‘이 네 젖꼭지를 잘 빨아야 산다’는 말이니 ‘천주님을 떠나면 살 수 없다’는 말이니라. 약은
곧 태을주니라. (道典 7:58:3∼6)

 
 개벽이 될 때에는,
천지부모를 찾아야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. 이 말씀에서,
우리는 왜 태을주를 읽어야 하는지,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.

 
수행
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게, 수행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죠. ‘수행을 해야 한다’는 이 마음만 살아나면, ‘반드시 수행을 하겠다’는 이
마음만 끊어지지 않으면, 그 사람은 살아있는 참 생명입니다. 생명력 있는 구도자입니다.

 하지만,
밖에서는 돈 잘 벌리지, 집에 가면 애들 말 잘 듣지, 부족함 없이 모든 게 잘 돌아가면, 수행과는 멀어집니다.
 “아, 한 잔 먹고 기분
좋으니, 나는 내일 죽어도 좋다. 한이 없다. 나에게는 한이 없는 게 한이다.” 이런 놈들이 있습니다.
 그냥 하루하루 사는 것 자체로
만족하는 이런 사람은, 수행의 필요성을 철저하게 절감하지 못합니다. 그러면, 기운이 열리지 않습니다.
size=3>자신의 마음이나 의지에 따라 태을주의 기운, 신이 감응하기 때문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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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그러나, 수행을 하지 않는 삶은 별 의미가 없다는 걸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면, 그 사람은 대단히 심오하게 깨지는
겁니다. 엄청난 철학적 자각을 하는 겁니다. 생명에 대해, 생명의 본질에 대해, 크게 눈 뜨는 겁니다.
 생명의 본질 문제로 보면,
수행을 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목숨입니다.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. 그가 이 세상에 와서 뭘 성취했든지
간에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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